2009년 8월 14일
양심과 자의식
양심이란 무엇인가?
양심(良心) conscience,
사물에 선과 악을 구별하여 나뿐 짓을 하지 않고 바른 행동을 하려는 마음의 작용.(국어사전)
사실 양심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을 수 있으나 양심은 사람만이 갖고 있는 자의식(self consciousness)과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갓난아기는 영혼이 있으나 눈이 뜨이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 영혼의 눈을 뜨게 하여 자기를 의식시켜주는 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아기마다 부모가 주는 사랑과 관심의 정도와 그 표현 방법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갓난아기 때에 부모의 사랑으로 습관들여진 자기 확인의 방법은 일생동안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양심이란 반드시 선한 것만은 아니며 그렇다고 양심은 악한 것만도 아닙니다. 단지 자기의식으로 확인하는 방법으로서 습관 되어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양심은 그 사람에게 사랑과 관심을 심어준 사람들의 개성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또 각자 선천적으로 태어난 소질과 성품에 따라 그 표현이 다릅니다.
같은 사회 안에서 사람들은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거의 같으므로 양심의 반응은 같은 사회 안에서는 대체로 같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양심을 부인하면 자기 인식의 방법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영혼의 활동이 약화되어 불안을 느낍니다.
사실 양심의 가책은 자기 회복의 요구요 자기 생을 지키려는 영혼의 부르짖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죄를 지으면 가장 깊은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가 바로 양심의 소리입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4-15).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말씀으로 심판을 받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양심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일생에 받을 수 있는 사랑과 관심은 어려서 부모로부터 받게 됩니다. 사람이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과 관심도 자기 아이들에게 줍니다. 그 후 아이들은 커가면서 사랑과 관심을 주는 가정에서 벗어난 후에도 그곳에서 키운 습관을 그대로 간직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 거짓말을 처음 한 아이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계속하면 가책이 없어집니다. 더군다나 많은 형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란 양심은 저항력이 없어졌기 때문에 커가면서 거짓말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같이 살아가는 부인도 처음에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 따라가다 보면 나중에 똑 같이 죄책감을 못 느끼게 되고 그 자식들도 같은 형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속담에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왜 아들이 이가 시리다 함은 어쩜 이뇨.(겔18:2)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려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5-6)
사실 3-4대까지라면 씨가 말라버리고 맙니다. 이 말을 잊지 말게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말씀과 같은 뜻이겠지요.
특히 군대도 가지 못한 자가 자기의 거짓된 신원을 포장하기 위하여 가짜 해병 전우회나 한국전 참전 용사회 같은 세력을 만들어서 지난 6.25때 펀치볼 국군묘지에서 많은 훈장을 달고 거만스럽게 행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은 거짓을 더욱 위장하기 위하여 교민들을 속이거나 이용하고 공갈치는 파렴치한 인간이 이곳 지상에 낙원이라는 하와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하여 저울추를 속여가면서 이익을 챙기는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 살을 먹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이 나중에 어려운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해를 봐도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는 삼가야만 합니다.
속이는 저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느니라.(잠언11:1)
마치 사형수가 돈가스가 먹고 싶어 자기 몸을 서울 대학 실험실에 팔아서 그 돈 가지고 돈가스 몇 그릇 사먹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이런 것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양심을 꾸겨 가면서 심은 것이기에 자기가 거둘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소홀히 여김이 없으시느니라. 사람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8)
그러므로 양심은 자의식에 관계되기도 하지만 현재 환경과 사람들의 태도의 따라 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주위 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 사람은 어렸을 때 양심을 간직하지만 오늘날 광야와 같은 험악한 세상에 물들고 나면 양심의 소리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된 그 사람은 영에 대한 자의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물질과 환경을 이용하여 짐승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기화한 반 자아, 즉 마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양심 판에 기록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양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 말씀을 배움으로써 그의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오직 선한 양심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느니라.(벧전3:21) 그러므로 믿는 자의 양심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적인 의식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다고 하면서 남을 속이는 자들은 양심을 버린 자들이요 믿음의 함대가 이미 파선된 자들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라, 어떤 이들은 이런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9)
오래 전(98) 오산리 국제 금식기도원에서 장기 금식을 무사히 마치고 보호식 기간 중 몸이 어느 정도 호전되었기에 동대문 시장을 지나가다가 시장기가 있어 호박죽을 먹으러 갔습니다. 옆 가계에서 크게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뭘 사기를 쳤다면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소리들을 지르는 것입니다.
"야 ! 이놈아 네가 장로냐……. 이년아 ! 너는 권사라는 게 그따위냐” 옆에 말리던 사람이 장로님 참으세요! 그리고 권사님도 참으시고…….
말리는 사람을 붙들고, 집사님 생각 좀 해봐 저년이 권사레…….
여기에 싸우고 말리는 년 놈들이 모두가 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계급들이 장로, 권사, 집사들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지나 않았으면 호박죽이나 맛있게 먹었을 텐데. 그 소리 듣고 입맛이 떨어져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까운 돈 3000원 지불하고 양심을 꾸긴 자들을 생각하면서 시끄러운 시장 거리를 걸어 나온 적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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