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7일
죽음의 계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봄에는 새싹이 파룻파룻 돋아나는 희망의 아름다움이 있고, 여름에는 그 새싹을 더욱 푸르게 성숙시키는 신록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가을은 나뭇잎들이 노랑 빨강으로 옷을 갈 아 입는 단풍의 진경이 아름다운 그 웅장함에 숙연함 마저 드는 계절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목들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가을이 깊어 겨울로 접어들면 일 년 수명을 가진 수많은 이름 모를 풀이나 벌레들은 마르고 죽어 본 고향인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가을은 죽음의 계절이라고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원래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할 때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고, 또 서글픈 마음을 갖게 하는 계절이기도하지요.
죽어가는 벌레나 풀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 특별히 지음 받은 인간만이 죽음을 느끼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죽음의 문제를 생의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가을은 식물이나 벌레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계절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계절입니다. 즉 인간에게만 무서움으로 의식되는 죽음에 문제라는 것이지요.
짐승이나 곤충이나 식물들은 죽음을 모른답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피조물들 중에 오직 인간들에게만 영혼을 넣어주셨기에 죽음을 의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의식을 통하여 "내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살다가,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 를 깊이 깨닫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죽고 사는 권세를 쥐고 계신 절대자이심을 믿음으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건강과 물질과 자녀들의 복을 주시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미물의 곤충이나 풀들의 짧은 생을 잘 살펴보면서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신 우리 주님의 위대하심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가을 날씨는 높고 청명한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가을은 죽음의 계절이면서도 참다운 삶을 수확하는 결실의 계절인 동시에 부활을 바라볼 수 있는 소망의 찬 계절이기도 합니다.
이곳 하와이 날씨는 고국과 같이 단풍을 구경할 수가 없기에 66번째 맞는 생일을 뉴욕에 사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려고 가는 도중 오리건 주 안에 그 유명한 크레이더 렉에 절경을 사진기에 담고 단풍을 찾아 며칠을 머물었으나, 그래도 단풍에 절경은 버몬트와 뉴욕 북부에 위치한 켓스킬 마운틴계곡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서 잠시 차를 세워 놓고 고국의 단풍을 회상해 봅니다.
역시 나의 조국의 가을 경치는 운치와 함께 아기자기하면서 더 아름다운 것만 같은데, 고국 뉴스를 보면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저하됨에 따라 각종 살인 사기 절도 횡령등등 파렴치한 범죄들만이 성행되어가는 한국을 생각할 때 서글퍼지기만 한답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단풍이 아름다운 것과 같이 보이지 않는 국민들의 의식구조부터가 고국의 단풍처럼 아름답게 되기를 바라면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그러므로 너희 인생이 무엇이뇨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아침 안개와 같으니라. 너희들은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오늘 어떤 일들이 일어날 줄 알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에 꽃과 같으니 풀을 시들고 꽃은 떨어지는 니라.”(성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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